‘멋지다!’ ‘멋있다!!’
참 좋은 말이다.
자연 속에서 핀 꽃, 누가 심지 않았고,
누가 가꾸지 않았는데도, 아름답고, 멋지다.
그런데 그 ‘멋’이라는 그 말을 쓸 때가 별로 없다.
왜 그런가?
참으로 멋진 사람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멋진 일’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 멋들어진 일도 별로 없는데,
옛사람들은 멋을 무엇이라 말했던가?
‘멋’ 그것을 가져다 어떤 이는 도道라 하고, 일물一物이라 하고 일심一心이라 하고 대중이 없는데, 하여간 도道고, 일물이고, 일심이고 간에 오늘밤엔 ‘멋’이다. 멋을 멋있게 하는 것이 바로 무상無常인가 하면 무상을 무상케 하는 것이 또한 멋이다. 변함이 없는 세상이라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이 커다란 멋을 세상 사람은 번뇌煩惱라 이르더라. 가장 큰 괴로움이라 하더라. 우주를 자적自適하면 우주는 멋이 있다.
우주를 회의懷疑하면 우주는 슬픈 속俗이었다.
나와 우주 사이에 주종主從의 관계있어 이를 향락하고 향락당하겠는가. 우주를 내가 향락하겠는가.
우주를 내가 향락하는가 하면 우주가 나를 향락하는 것이다. 나의 멋이 한곳에서 슬픔이 되고, 그런가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즐거움이 되고 아雅가 되는구나.
죽지 못해 살 바에는 없는 재미도 짐짓 있다 하랴.“
조지훈 시인의 산문집
<동문서답東問西答>에 실린 글이다.
인생을 어찌 살 것인가? 곧 죽어도 멋있게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멋들어지게 살기는커녕,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멋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사는 시절이 많다.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이 세상을 살면서, 한껏 멋있고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사는 것이 그렇게 산다는 말인가?
“위아래 붉은 빛 푸른 빛 아리따운 옷 걸치고, 예쁜 비녀 팔 색 보석 치장하라 하시지만, 나는 평생 자연스런 멋을 좋아했다는 것을 알아주셔야 해요.”
이탁오와 친분관계를 유지했던 탕현조湯顯祖의 유명한 극인 <모란정(牧丹亭>의 대사 중 한 구절로 경몽驚夢은 팽현조의 문예관이기도 하였다.
위의 글처럼 세상에서 최고의 멋은 자연스러움 속에서 나온다. 아무리 치장하고 찍어 발라도, 아무리 교묘하게 눈속임을 해도 자연스러움 속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멋을 능가할 수는 없다.
라 브뤼예르는 <인간 성격론>이라는 책에서 “정말 멋없는 성격이란, 아무런 특징도 없는 성격을 말한다.” 고 한 뒤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말을 멋지게 할 줄 아는 재치도 없고, 침묵하고 있을 만한 판단력도 없다는 것은 크나큰 불행이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무례無禮함의 기본임을 명심하라.”
자기 마음이 크나큰 병이 들 있는 줄은 모르고, 뜬구름 같은 권력과 재물만 탐닉하다가 이 욕, 저 욕 다 먹으며 타고 난 재처럼 스러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어차피 한 번 태어나서 한번 살다가 가는 생, 스스로가 아름답게 멋있게 살다 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길위의 인문학을 이끄는 신정일님 작성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