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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가장 존경받는 인물 "사카모토 료마"

나는 새 2010. 3. 9. 09:04

성장
사카모토는 음력 1835년 11월 15일, 시코쿠의 도사 번(오늘날의 고치 현) 고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하치헤이는 하급무사인 고시(鄕士)계급이었다.


1853년 에도로 유학하여 북진일도류(北辰一刀流) 지바 도장에서 검술을 배우면서,

한편 에도의 존왕양이론자들과 사귀었다.

 

그 해 페리 제독이 내항했고,

무사계급에서는 서양 세력에 대해 개항하려는 막부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었다.

 

같은 해 말 사쿠마 쇼잔의 사숙에서 공부했고,

1854년 고향으로 돌아가 유학자이자 화가인 가와다 쇼류로부터 서양에 대해 배웠다.

 

탈번
사카모토는 1861년 다케치 즈이잔이 주도한 도사근왕당(도사출신의 하급무사들이 천황을 지키고

도쿠가와 막부를 타도하고자 모인 모임)에 참여했다.

 

1862년 도사근왕당은 번의 중신 요시다를 암살하며,

사카모토는 탈번하여 낭인(소속이 없는 사무라이)으로서 에도로 향했다.

 

당시 탈번은 사형에 처해지는 중죄였다.

그 해 개화파 막부 관리 가쓰 가이슈를 죽이려다 오히려 설복돼

그의 제자가 된다(이 일화는 사실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가쓰 가이슈는 료마에게 사이고 다카모리를 소개해줬다.

가쓰로부터 서양 문물을 배운 사카모토는 양이에서 개화로 생각이 크게 바뀌며,

번이라는 작은 나라가 아니라 일본국으로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듬해 가쓰를 도와 고베 해군훈련소 설립에 힘썼다.

이후 가쓰가 물러나고 훈련소가 문을 닫자, 사카모토는 무역회사 가이엔타이(海援隊)를 세웠다.

가이엔타이는 이후 도막파에 군수 보급을 하기도 했다.

도막의 중심은 사쓰마 번(가고시마 현)과 조슈 번(야마구치 현)이었다.

사카모토는 동향인 나카오카 신타로와 함께 사이가 나쁜 두 번을 중재하여,

1866년 삿초 동맹(사쓰마와 조슈 동맹)을 결성하는 데 공헌했다.

 

죽음
1867년 교토로 가는 배에서 사카모토는 대정봉환 등의 구상을 담은 선중팔책을 입안했다.

대정봉환의 구상은 사카모토가 속했던 토사번의 번주인 야마노우치 토요시게가 토쿠가와

요시노부에게 건의하여 채택되었다.

 

이후 천황이 이를 받아들여 실제로 대정봉환이 이뤄졌고,

정권은 막부에서 천황 중심의 조정으로 평화적으로 넘어갔다.


대정봉환 한달 후 사카모토는 나카오카와 함께 교토에 머물다가

음력 11월 15일인 여관 오미야에서 습격을 받고 피살됐다.

(오미야 사건)누구의 소행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막부측 미마와리구미의 소행이라는 설이 유력한 가운데,

신센구미, 아군인 사쓰마의 소행이라는 등 여러 설이 있다.

사카모토는 머리에 상처를 입었고 천천히 죽어갔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당시 같이 습격당했던 나카오카가 중태인 가운데서도

3일간 생존했기 때문에 그에 의해 소상히 전해 질 수 있었다.

유족으로 부인 오료와 누나 오토메 등이 있었다.

미마와리구미 소행설은 근거 자료가 있다.

보신 전쟁이 끝나고 체포된 전 미마와리구미의 대원 이마이 노부오가 사카모토 료마 암살은

자신들에 의한 것이라고 증언하며

당시의 세세한 정보를 모두 말한 것이 교부쇼(강무소) 공술서에 기록이 돼있다.

아직까지도 이를 뒤집을 만한 사료는 나오지 않고 있다.


평가
사카모토는 훌륭한 검술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번도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그를 암살하기 위해 미마와리구미(막부순찰대) 30명 정도가 습격한 데라다야 사건 때,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있던 권총으로 막리(幕吏) 두 명을 살해한 적은 있다.

 

이것이 유일하게 밝혀진 료마의 살인 기록이다.

후에 미마와리구미 측 주장으로는 이 때의 살인이 료마 암살의 명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칼로 사람을 베어 죽인 적은 없다.


당시 돈만 쫒아다닌다는 주변의 평도 있었다.
오늘날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역사상 인물 중 한 사람이다.

 

관련 서적
료마가 간다 - 시바 료타로 지음, 이길진 옮김, 창해 간. 전 10권.

사카모토는 종래 크게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1962년부터 신문에 연재된 시바 료타로의 역사소설 《료마가 간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유명해졌다.

여기서 그는 난세에 일본이라는 나라의 미래를 내다보고 실행하는 풍운아로 그려진다.


오이 료마(お〜い龍馬) - 장편 만화
사카모토 료마 - 야마오카 소하치 지음, 이길진 옮김, 솔출판사 간. 전 3권.
근대일본의 사상가들 - 가노 마사나오 지음, 이애숙 외 옮김, 삼천리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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