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山大學敎

29산 남해 금산

나는 새 2010. 2. 28. 21:40

 

 

 

 

 

 

 

 

 

 

 

 

 

 

 

 

죠스바위(일월봉의 다른 모습)

 

 

 

 

 

 

 

 

 

 

 

 

 

 

 

 

 

 

 

 

07시 정각에 원광새마을 본점을 출발한 2대의 버스는

지리산온천 3거리 휴게소에서 10여분 휴식을 갖고

구례에서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길 순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섬진강변을 따라 하동방면으로 길을 잡아

하동을 경유 남해 금산의 복곡주차장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할 분들이 내리고

산행할 약 30여명이 금산주차장에 10시 30분에 도착 산행을 시작하였다.

 

11시 30분경 도선바위 → 일월봉 → 쌍홍문(장군암)을 경유 금산산장(돼지바위)에

도착하여 산장에서 빗은 막걸리 2병(페트병, 1명을 술을 즐겨하시는 장인어른 몫),

라면2개, 부친개 1개를 27,000원(막걸리, 전 7,000, 라면 3,000)를 곁들여

영원지기, 산행팀장 등 4명이 마음의 점(點心)을 찍었다.

 

막걸리 3잔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아주머니가 다음에 또 오라해

돈 많이 벌도록 기도해 주어 많이 벌면 매년 오겠다니 바로 위쪽을 가리키며

돼지바위에서 기도를 올리며 재복이 온다해

혼자 올라가니 오래된 합판이 바닥에 놓여있다.

가족을 위한 소원을 빌고 5배하고 내려왔다.

 

 

정상을 경유 1시 30분 보리암에 도착하여 기도를 하고 약 200여미터 위의 기념품점에서

신금난향(10,000원) 1갑을 사고 편도 1,000원의 셔틀버스로 복곡주차장으로 내려와 말린매생이 2묶음(1묶음 3,000, 2묶음 5,000)을 사고 타고온 2호차가 3시에 도착키로 하였는데

2시 20분, 밖에서 한 10여분 기다리니 영원지기가 너무 춥다해

2호차 통로에서 조금 기다리다 차라리 어묵을 먹자해 가게에서 어묵을 먹고 쉬다

3시 10분 출발하였다.

 

금산산장에서 마신 3잔의 막걸 리가 위력을 발휘해

본래의 맨 뒷좌석에 앉으면 토할 것 같아 남원의 천왕봉휴게소까지

안내석에 앉아 왔는데 덕분에 주변경관을 즐기며 왔다.

하지만 가면서 본 2그루의 꽃핀 매화나무는 어찌하다보니 보지 못하였다.

18시 원점회귀하였다.

우리나라에는 3대 관음 기도 도량이 있다. 남해 금산의 보리암(菩提庵), 동해 낙산사의 홍련암(紅蓮庵), 그리고 서해 강화도 보문사(普門寺)다. 어떤 이는 낙산사와 보문사 대신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팔공산 갓바위를 꼽기도 한다. 감히 누가 보리암을 대신할 생각을 못하니 그 만큼 기도의 효험이 우열을 다툴 필요 없이 출중하다는 증거다. 그래서 경남 남해의 금산을 관음(觀音) 성지(聖地)라 한다.

나그네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연유로 금산의 보리암이 국내 최고의 기도 도량으로 타의추종을 불허하게 되었을까. 나그네는 금산을 향해 남해로, 남해로 달렸다.금산(錦山·681m)에 중턱쯤 오르면 넘실거리는 남해 다도해 절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상주 해수욕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금산은 한려 해상국립공원 내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주봉(主峰)인 망대를 중심으로 좌우에 기암괴석 봉우리들이 도열해 있다. 금산은 사람으로 치면 완벽한 미인이다. 어느 한구석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균형과 조화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오죽하면 ‘금산 38경’이라 했을까. 감상하고 음미할 미(美)를 8경도, 10경도 아닌 무려 38군데나 지닌 산계(山界)의 미스코리아 격이다.

금산은 본래 이름이 아니다. 본명은 보광산(普光山)이다. 보문(普門)에서 ‘보(普)’자를 따왔다. 보문은 관세음(觀世音)의 별칭이다. 신라 신문왕 3년(683년) 이 산에 풀집을 짓고 수도하던 원효대사가 희뿌연 광채를 뿜으며 나타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감동으로 지은 이름이다. 이는 보광산의 ‘광(光)’자로 기록됐다. 보광산을 금산으로 개명한 인물은 조선 태조 이성계다. 고려를 내리고 조선을 올리는 준비과정에서 이성계는 명산을 돌며 자신의 뇌파를 한껏 모아 기도했다. 백두산과 지리산의 산신(山神)은 이성계의 기도에 심드렁했다. 하지만 보광산은 달랐다. 원효대사의 기도처에서 200m 남짓 떨어진 삼불암(三佛巖)에서 치성을 드렸다. 이성계는 보광산신에게 약속을 했다. 새 나라를 열면 보광산을 비단으로 덮겠다고. 보광산신은 이성계의 청을 기꺼이 수용했다. 결국, 조선 개국에 성공한 이성계는 약속을 지켜야했다.

나그네는 이성계가 치성을 드리던 조선 태조기단(祈壇)에서 태조 영가(靈駕)와 마주쳤다. 주로 계룡산과 북한산을 오가던 태조 영가가 왜 금산에 나타났을까. 무슨 깊은 뜻이 있거니 예상했지만 지레짐작에 불과했다. 태조 영가는 “일은 무슨 일…. 하도 추워서 잠시 내려와 있을 뿐”이라는 답이었다.

영혼도 추위를 탄다. 남해군의 1월 평균기온이 1.7도, 2월에는 3.3도로 따뜻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겨울철이면 각 종목 운동선수의 전지훈련장으로 인기 높은 지역이 바로 남해다. 태조가 털어놓았다. “100일 기도를 올리면서 그랬지. ‘세상을 내게 주면 산을 온통 비단으로 덮어주겠다’고. 그런데 비단이 어디 좀 귀한가. 이 큰 산을 무슨 수로 다 감싸겠는가. 그래서 꾀를 냈지. 산 이름을 아예 금(錦)으로 바꿔버렸다네.”

태조 옆을 그림자처럼 지키는 정도전의 영가가 끼어들었다. 금산이라는 작명은 자신의 아이디어였다는 것이다. “비단이야 닳고 퇴색하겠지만 산 이름을 새로 내리면 영원할 것이라고 했더니 대왕(태조)이 반색을 하더라”는 고백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의 수사(修辭)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는 점을 재확인한 순간이다. 물론 영계는 물질보다 정성을 윗길로 치기는 한다. 숨진 부모가 좋은 영혼세계로 가도록 영계의 지폐, 즉 가짜 돈을 태우는 이들이 더러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니, 일리 있는 훈수가 아니겠는가.

이성계가 조선 건국을 기원하는 100일 기도를 올리며 매달린 절대자 셋은 환인과 환웅 그리고 단군, 이렇게 3대다. 이성계 영가는 “그렇지만 단군 할아버지와 석가모니가 반목한 것은 결코 아니다”고 강조하면서 조선 태조기단 위쪽의 삼불암을 보기로 들었다. 바위 셋 중 하나는 누워 있고, 둘은 서 있다. 이 바위 셋의 모습이 꼭 앉아 있는 부처 같다. 이성계 영가가 100일 기도를 하기 전까지 바위 셋은 죄다 누워 있었다. 기도를 마치자 바위 둘이 일어나 앉았다. 나머지 하나는 끝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셋이 다 일어났다면 이성계는 조선의 국왕을 넘어설 수 있었다. 중국까지 손아귀에 쥔 황제가 될 수 있었다. 단군과 석가가 각자 평가, 추후 맞춰 보고 공감한 이성계의 그릇 크기는 그러나 조선까지였다.

이성계가 기도 중에 금산에서 목격했다는 단군은 나그네가 친견한 단군과 정확히 일치한다. 단군상은 그림이든, 동상이든 긴 수염에 도포 차림의 노인으로 묘사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 단군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혈기왕성한 청년이다. 민족의 시조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왕검은 실존 인물이었다. 적어도 영혼의 세계에서는 실체를 갖춘 젊은 무장(武將)의 모습이었다. 6척 거구에 살이 많이 찐 편이며, 얼굴은 붉고 눈이 작은 것이 단군 혼백의 외모상 특징이다. 나그네는 단군의 혼령과 여러 차례 만나 대화했다. 단군은 강력한 정신력, 즉 엄청난 뇌파를 가진 인물이다. 샤먼(무당)처럼 뇌파의 델타 파장 영역까지 넘나드는 굉장한 영능력을 갖추고 있다. 청동검으로 중무장하고 갑옷을 입었으며 투구를 쓰고 있다.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온 것도 아니다. 만주, 시베리아 등지에서 선진문명을 지니고 들어온 이민족이었다. 초혼에 응한 단군은 “아버지 환웅은 중국 북부에서 먼저 청동기 문명을 발달시킨 부족의 장군이다. 고(古) 아시아족이 살던 한반도를 침략하는 데 앞장섰던 전투부대 대장이었다”고 밝혔다. 한반도 북부를 평정한 단군 아버지(환웅)의 부대가 토착부족, 곧 곰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숭상하던 부족 중 곰 부족의 딸을 아내로 맞아 낳은 아들이 바로 단군 자신이라고도 했다. 단군은 또 “쑥과 마늘을 가지고 동굴에서 견디라는 이야기는 여염집 여자들과는 달리 밖에 나가 잡혼을 하지 않고 한집에 머물면서 지배자만 섬기게 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단군이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많다. “내게는 영(靈)과 육(肉), 정신과 물질을 모두 다루는 능력이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단군을 처음 청했을 때 하얀 도복을 입고 나타난 단군의 영혼은 다짜고짜 나그네더러 “무릎을 꿇어라”고 명했다. 아울러 “이런 일(초혼) 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내가 제일”이라며 나그네를 무시했다. 그렇다. 단군왕검의 영력(靈力)은 대단하다. 금산에도 바로 이 단군을 모신 성전(聖殿)이 있다.

원효는 고승(高僧)일 뿐 국가 권력자가 아니다. 후세의 이성계에게 보광산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이성계가 금산이라 개명했으니 한편으로는 단군왕검의 산이 부처에게 넘어갔다 되돌아온 셈이 아닌가.

알고보면 금산은 어디나 기도처다. 해골바가지의 퀭한 두 눈을 쏙 빼닮은 쌍홍문(雙虹門)이 있다. 홍(虹)은 무지개, 따라서 쌍무지개 문이다. 예쁘고 부드러운 것을 즐기는 동서남북 사방의 신선이 한데 모여 사선대(四仙臺)에서 신선 놀음을 하면서 바위에 거대한 구멍을 둘씩이나 뚫은 결과란다. 금산의 명치에 해당하는 쌍홍문은 금산을 드나드는 관문이며 자연이 만든 보리암 일주문이다. 옛날엔 천양문이라 불렀으나 신라 초기 원효대사가 ‘두 굴이 쌍무지개 같다’ 하여 쌍홍문이라 부른데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한다. 석가세존은 돌배를 타고 오른쪽 쌍홍문을 통과해 인도로 가기도 했다. 이름은 문(門)이지만 굴(窟) 속으로 들어간다는 기분으로 쌍홍문을 지나면 천장에 구멍 셋이 입을 벌리고 있다. 여기에 공이질하듯 돌을 던져 모두 골인시킨 사람의 소원 한 가지를 금산 산신령이 들어준다. 가장 잘 해결되는 소원은 득남이다. 후암미래연구소 대표 www.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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