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라는 고전에는 참으로 많은 ‘인(仁)’이라는 글자가 등장합니다. 책의 전체를 통해서는 무려 120여 글자가 나옵니다. 그렇게 보면 ‘인’이야말로 『논어』의 중심사상이자 공자(孔子)의 높은 이상이 담긴 글자임에 분명합니다. 공자나 맹자 시절에는 ‘인’에 대하여 특별한 해석이 필요없었습니다. 공자의 말씀과 행동은 모두 ‘인’에 근거하여 하는 말이자 행위였기에, ‘인’이 무엇이라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공자의 말씀을 들어보고 행하는 모습을 보면, ‘아! 저것이 인이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기에 자세한 설명이 요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공자나 맹자는 인을 설명해야할 경우가 있을 때는 전혀 어렵게 해석하지 않고, 그냥 “인이란 사람이다”(仁者人也)라고 말하여, 인이란 사람이 행해야할 너무도 당연한 것이어서, 인이란 그냥 사람이다라고만 풀어서 말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고 세월이 흐르면서 공자나 맹자의 말씀을 들을 수도 없고 행위를 목격할 수 없는 때에 이르자 ‘경학(經學)’, 즉 경전에 대한 해석학이 등장하면서 어려운 이론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우선 대표적인 중세의 경학자 주자(朱子)는 “인이란 마음의 덕(心德)이고, 사랑의 이치(天理, 愛之理)”라고 해석합니다. 우리 조선의 유학자들은 아무런 의심이나 주저함도 없이 수백년 동안을 ‘심덕이고 천리’라 확신하고 그렇게 믿고 살아왔습니다.
주자보다 600년 뒤에 태어난 다산 정약용에 이르러서야,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심덕과 천리’로 인을 해석하다보니, 아무런 행위나 행동, 즉 실천이 불가능한 이론만의 의미가 되어, 실천과 행위가 없다보니 물이 고여있는 상태여서 세상은 썩고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독특한 실학적 해석을 내립니다. 『논어』 헌문(憲門)편에, “군자이면서 인하지 못한 사람이야 있지만, 소인이면서 인한 사람은 없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곳의 해석에서 다산은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인이란 심덕도 아니고 천리도 아니다”(仁不是心德 不是天理)라고 말하고는, “충효(忠孝)를 지극하게 실천하면 인이다”(忠孝至極曰仁)라고 선언합니다. 인(仁)은 인(人)이기 때문에 사람의 당연한 도리인 충과 효를 지극하게 행동과 실천으로 옮기면 인이 된다고 여겼습니다. 충효를 말로만 하지 아니하고 실천과 행동으로 옮길 때 공자와 다산의 이상이 실현되는 것 아닐까요. 『논어고금주』에 나오는 이야기들입니다.
다산연구소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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