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기 위한 첫 걸음
1. 계산도 안하고 카드부터 꺼낸다
그런 날쌘돌이도 없다. 올해로 딱 마흔살이 된 김광훈(가명) 씨는 계산의 황태자다. 그의 삶에 ‘더치페이’란 있을 수 없다. 단체 회식이 아닌 이상, 언제, 어떤 사람과 밥을 먹어도 계산은 그의 차지다. 상대방들이 당황하며 ‘그럴 자리가 아니다’라고 말해도 막무가내다. 심지어 ‘오늘 밥값을 왜 내가 내는지’ 그 이유도 친절하게 설명함으로써, 영문도 모르고 얻어먹을 뻔 했던 사람들을 ‘안심’시켜주는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그는 평균 일주일에 3~4회 정도 ‘계산의 기회’를 만나는데, 더치페이를 하거나 누군가로부터 얻어먹는 일은 거의 없다. 식사 자리를 빨리 끝내고 싶은 누군가가 전화 통화를 한 뒤에 자리로 돌아오며 계산을 해버리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런 ‘불상사’가 닥치지 않는 한, 그는 식사가 끝나면 육상 선수처럼 탄력있게 뛰어나가 카운터에 카드를 들이댄다. 그러는 그의 얼굴을 보면 그의 육상 종목은 ‘계주’가 틀림없다. 자신이 전달하려는 카드를 계산원이 정확히 받고 있는지를 봄과 동시에 혹시 누군가가 자신보다 먼저 카드를 계산원에게 주지나 않을까, 후방을 경계하는 모습이 딱 계주 선수인 것이다. 나는 그렇게도 날쌘 그가 단 한번도 계산원에게 ‘얼마죠?’를 묻는 광경을 본 적이 없다. 그의 별명은 바뀌어야 한다. 그는 ‘계산의 황태자’가 아니라 ‘묻지마 지불의 황태자’인 것이다. 한번은 그에게 물었다. ‘왜 굳이 그렇게 하느냐’고. 그 까닭을 아는데는 불과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가난하게 자란 그에게는 세상에 대한 일종의 부채 의식이 있었다. 그간 세상에 신세 진 일이 엄청난데, 그렇게라도 해야 무언가 갚아간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밥값을 대신 내는 행위가 동석자에 대한 결례라는 건 아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돈 굳으면 좋은 거지, 예의는 무슨…’이라며 무시해버렸고, “그 누구도 당신의 행위에 대해 고마워하거나 기억하지 않는다”는 말에도, “나 좋으려고 하는 일이니 그들의 기억따위는 필요없다”며 일축했다.
또 다시 물었다. “그렇게 계산함으로써 연기처럼 사라지는 돈이 일년에 얼마인지 계산을 해 보았냐?” 그는 즉답을 못했고, 마주 앉아 대충 계산해 본 정산 결과가 나오자 ‘부채의식 해소비용치고는 생각보다 엄청 많네?’라며 얼굴이 붉어졌다. 계산 결과는 이렇다. 일주일에 4회, 평균 식사 인원 4인, 평균 테이블 단가 4만원, 거기에 일주일에 적어도 한번의 술자리에서도 제 버릇 개 못 주었으니, 그 비용(약 10만원/주)까지 합치면, 그의 외식비용은 한 달에 104만원이 나온다. 일년이면 1248만원, 그의 직장생활이 10년차에 다다르고 있으니, 어림잡아 6200만원이다. 그 돈을 알뜰하게 모았다면… 얘기하면 뭐하나. 그는 지금도 어디에선가 “계산은 제가 하겠습니다! 헤헤헤” 하며, 그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을 ‘무모한 계산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2. 아직도 핑크커튼을 기웃거리는 짐승남의 기약 없는 돈 쓰기
핑크커튼이란 파티장에서 여자들이 수시로 화장을 고치기 위한 파우더룸을 뜻하는 속어다. 핑크커튼 안에는 여인들의 민낯과 화장으로 완성된 얼굴, 그리고 체면 가리지 않는 음담과 패설이 날아다니는 곳이기도 하다. 개인사업자 박성춘(가명) 씨는 사업 수완도 좋고 인간 관리 능력도 뛰어나며 돈벌이도 나쁘진 않은 편이다. 가정도 잘 꾸려 예쁜 마눌님에 반듯한 자식 둘도 잘 커주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 막 핑크커튼에서 나온 ‘미녀’에게 약하다. 그저 심장 두근거리는 정도에서 끝나지도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접근해서 ‘애인’으로 만들어나 ‘개굴욕’ 또는 ‘성희롱법으로 신고 당하기 직전’까지 작업을 해야 상황을 끝내는 무모한 버릇이 있다. 그는 ‘미인에게 끌리는 것보다 자연친화적인 행위가 또 어디 있냐’고 말하지만, 누가 보아도 그 짓은 무모하고 바보같은 낭비 행위에 불과했다. 꽃뱀 구별법 정도는 익히 알고 있으며, 유부남과 만나는 여자가 자신에게 바라는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도 그는 잘 알고 있다. 물론 경험을 통한 학습효과다. 그가 여자를 사귀는 기간은 결코 길지 않다. 보통 3개월에서 6개월이었다. ‘짧으면 재미없고, 길면 정 든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물론 늘 애인이 끊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몇 년 잠잠해서 ‘이제 정신 좀 차렸나’ 생각하면 어느새 ‘새 애인 소식’을 들려주니까.
그는 사업이 그럭저럭 굴러가는 편이라 형편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애인’에게 쓰는 돈을 계산해 본 적은 없으나 그다지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가 애인들에게 쓰는 돈이 진짜로 별 것 아닌 수준일까? 한번은 그와 점심 식사를 함께하기로 했는데, 약속 장소에 가 보니 녀석의 옆에 여인 하나가 앉아있었다. 그녀의 첫인상은 한 마디로 ‘블링블링’이었다.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은 미용실 ‘실장님 센스’가 개입된 게 분명했고 패션 코디도 완벽해 보였다. 테이블 옆 옷걸이에 걸린 루이비통 백은 내가 아는 한 ‘신상’이 틀림없고, 예상컨데 나를 만나러 오는 길에 들른 백화점에서 박성춘의 카드로 구입했을 것이다. 식사 후 나는 몹쓸 호기심이 발동해서 친구와 저녁에 다시 만나 술 한 잔 하기로 약속했다. 그날 밤 그의 ‘애인 관리 항목’을 듣는 내 머리는 매우 고단했다. 일일이 계산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원칙이 있었다. 애인이 되면 일단 그녀가 원하는 백을 선물한다. 규모는 150만원에서 200만원이다. 해외여행을 한 번 이상 간다. 여행은 꼭 출장을 겸해서 간다. 일단은 그녀의 항공비만 추가되는 것이지만, 체류비, 그녀가 동행함으로 늘어난 일정, 현지에서의 쇼핑 규모 등을 따져보면 한번 해외 여행에 1000만원 정도는 소요된다. 업무만 보고 돌아왔다면 500만원 미만이면 끝날 일들이었다. 의외로 국내에서는 자주 만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가 만난 애인들 가운데 그의 지출을 걱정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서로 시작과 끝을 아는 ‘선수’들 아닌가. 애인 한 명 사귀면서 위의 옵션을 모두 사용했을 경우 그가 지불하는 비용은 대략 2000만원 정도다. 아직 일년에 두 명 이상 사귀는 경우는 없으니, 적어도 일년에 애인을 위해 나가는 돈이 2000만원이라는 추론이 나온다. 5년을 모으면 액면가 1억원이며, 그 돈이면 상암동에서 분양중인 임대 수익 보장되는 오피스텔 2실을 ‘일단 분양받을 수 있는’ 규모다.
3. 질투쟁이 이창현 씨의 무모한 마니아 코스프레
어느날 그에게 전화가 왔다. “형님에게 보여드릴 게 있는데, 저희 집에 한번 와주시면 안될까요?”. 보여 줄 게 무엇인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대략 어떤 물건을 사놓고 자랑질을 해 댈지 예상은 되었다. 석 달 전에 초대받아 갔을 때 그가 내놓았던 것이 ‘비오사운드4+비오랩4(뱅앤올룹슨 미니오디오로 가격은 700만원대)’ 오디오 시스템이었으니 이번에는 아마도 사진과 관련된 그 어떤 것이 아닐까? 그가 뱅앤올룹슨에 꽂힌 것은 1년 전 그의 선배이자 클래식 마니아인 조 모 씨의 집을 다녀온 뒤였다. 조 모 씨는 클래식뿐 아니라 오디오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으로 평일에는 퇴근 후 마치 ‘히키코모리’ 처럼 집에 쳐박혀 음악에 탐닉하며, 주말이면 예외없이 음향 전문가들과 어울려 새로운 정보를 교환하고 체험하며 보낸다. 욕심나는 공연도 빼놓지 않고 본다. 그는 비록 작은 집에 살지만 음향설계를 적용한 거실은 스튜디오를 방불케 한다. 그곳에 앉아 음악을 듣노라면 0.5초 만에 황홀지경에 빠져들고 만다. 그것을 경험한 이현수 씨는 100만원대의 마란츠 오디오에서 시작, 툭하면 제품을 바꿔치기 하더니 드디어 ‘약소하지만 비오사운드 4급’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그의 거실은 음향설계가 되어있지 않아서 어떤 오디오를 갖다 놓아도 조 씨 집에서 경험했던 음향을 맛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창현 씨는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음악적 취향은 100만원대의 홈시어터만 갖춰도 ‘취미가 오디오도 아닌데 너무 과한 게 아니냐’는 수준이다. 그의 700만원 짜리 뱅앤올룹슨에는 벌써 먼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의 두 번째 코스프레는 사진이다. 그가 속해있는 절친 그룹에는 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사진가가 두어 명 있다. 그 중 한 사람은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는 사진가다. 그는 거래처 사진의 경우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해서 보정 작업 후 납품하지만, 개인 사진, 또는 클라이언트가 특별히 요구하는 경우 자신의 암실에서 인화 작업을 한다. 이창현 씨가 사진에 미친 것은 바로 그 암실에 들어간 직후부터였다. 사진을 모르는 그였지만, 단박에 캐논 ‘5D 마크3’, 일명 ‘오두막 쓰리’에 광각, 망원 렌즈를 세트로 구입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중고 필름카메라를 구입했고, 사진가 친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암실을 만들어 매일 인화 놀이를 하기도 했다. ‘오두막 쓰리’ 몸체 가격은 429만원이며, 함께 구입한 EF24-105, EF70-300 렌즈의 가격은 합쳐서 약 300만원이며, 거기에 삼각대와 카메라 백팩의 합계가 60만원 쯤이다. 거기에 ‘일단 연습용’이라는 전제로 구입한 캐논 필름카메라 세트 가격 약 100만원에, 결국은 본인도 후회한 암실 설치비 100여 만원을 합하면 그가 한 달에 꼴랑 한 두 번의 ‘출사’와 ‘인화’ 놀이를 위해 몫돈으로 쓴 돈이 약 1000만원이다. 그가 그동안 일시적으로 꽃혀 질러버린 500만원대의 MTB(지금은 바람 빠진 타이어 꼴을 해서는 창고에 쳐박여 있음), 역시 500만원 대의 캠핑 장비(가족의 반대로 다시 리조트로 돌아섬), 합산 불가능한 와인 켈렉션과 100만원 대의 셀러(이것은 지금도 유지하지만 켈렉션은 흐지부지 되었고, 40줄 이후 막걸리 맛에 푹 빠져있음) 등 주변 마니아들의 ‘간지 있어보이는 자태’를 동경하여 낭비한 돈이 무려 3000만원이 넘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의 마니아 코스프레 기간이 순식간에 끝나버린다는 점이다. 2단계, 3단계까지 진행된 위에 흐지부지 되어왔다면 그 액수는 두 배 이상이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아내의 말이다. 사실 세상에는 이창현 아바타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들에게 꼭 필요한 벤자민 플랭클린의 명언 하나를 전한다.
“갖고싶은 걸 사지 마라, 꼭 필요한 것을 사라, 작은 지출을 삼가라, 작은 구멍 때문에 언젠가는 침몰하고 말 것이다.”
4. 바보야, 그것은 나눔이 아니라 호구놀이야
답답한 노릇이다. 30대 후반의 김형석(가명) 씨는 내가 아는 한 정말 딱한 사람이다. 주변에서는 그를 가리켜 ‘오지랖 때문에 망한 천재’라고 부른다. 그는 10여 년 동안 조그만 잡지사의 기자로 일을 하다 ‘음악 전문 작가’가 되겠다며 퇴직했다. 기자답게 붙임성 좋고 언변도 뛰어난 그는 10년 직장 생활을 하며 적지 않은 인맥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기자 김형석은 야무지고 똘똘했으나 사업에 있어서는 허당이었다. 도대체 사업계획서는 쓰고 사표를 던진건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단 그에게는 자기 몸값이 없다. 글을 쓰든, 보도자료를 작성해주든, 홍보를 해 주든, 업계 잡지를 만들어 주든, 자기 기준 없이 무조건 상대 기준에 맞춰주다 보니 어떤 일을 해도 남는 돈이 없었다. 결국 그는 ‘사람 좋고 능력 뛰어난 친구’로 소문이 났고, 여기 저기에서 그를 찾는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그에게 전화를 걸면 그는 무조건 약속부터 하고 본다. 일의 성격이 무엇인지, 언제까지 해야하는지, 예산은 얼마이며 결제 조건은 무엇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찾으면 와 주고, 소득을 보장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하고는 돌아가고, 미안한 마음에 술 한 잔 대접하려하면 꼭 제 카드로 계산하는 그를 바보라고 욕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호구놀이’ 하는 동안, 지난 10년 동안 그럭저럭 고정 수입으로 생활하던 그의 아내와 가족은 들쭉날쭉한 수입에 불안불안해하며 살게 되었다.
그의 미래는 더욱 불안하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업무에 한계가 있었는데, 이제 사회에 나와 살다 보니, 그는 기획, 텍스트, 보도자료 등 자기 전공 분야는 물론, 공연계, 출판계, 관련 기관에서까지 영역이 넓어졌다. 김형석 씨는 오늘도 부지런히 자기를 부르는 곳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의 절친 중에 회계사가 한 명 있는데, 그도 답답했는지, 한번은 김형석 씨를 만나 그가 그동안 ‘거의 무료 봉사’ 수준으로 해 준 일의 시장 가격을 따져보았다. 그러나 그 계산은 끝내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시장 가격의 절반도 안되는 돈을 받고 해 준 일이 한 두가지 아니고, 자신의 인건비는 고사하고 운영, 진행비를 포함하면 손해보며 한 일이 수두룩 했기 때문이다. 분노하며 야단치는 친구에게 김형석 씨가 반항하며 한 말은 ‘나눔’이었다. ‘거래하는 사람들도 형편이 좋지 않으니 시장 가격대로 받을 수는 없다, 일종의 나눔이며, 훗날 어떤 방식으로든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친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김형석 씨의 행동은 ‘나눔’이 아니라 ‘오지랖’이었다. ‘오지랖 넓다’는 말을 ‘발이 넓다’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는데, 원래 ‘오지랖’이란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중요한 것은 ‘쓸데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오지랖 떨며 허송세월 보내는 동안 그들의 주머니엔 먼지만 쌓이고, 그의 친구들은 하나 둘 그를 떠나게 된다. 사람이란 본능적으로 ‘도움이되지 않는 사람을 멀리하는’ 습관이 있으니까.
5. 홈쇼핑에 환장한 조대리의 암울한 미래
홈쇼핑의 황태자 조경환 대리가 TV 즐겨찾기에 등록시킨 채널은 홈쇼핑-공중파-종편이 전부다. 공중파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종편은 토크쇼를 보기 위해, 그리고 홈쇼핑은 당연히 신상 구매를 위해 설정해 두었다. 그는 30평형 대의 전세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그의 집을 한번 다녀온 사람들은 다시는 그의 초대에 응하지 않는다. 거실 사방은 물론 안방, 건너방 할 것 없이 홈쇼핑에서 구입한 쓸데없는 물건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일단은 복잡하고, 그 뒤엔 자연스럽게 그의 쇼핑 히스토리를 듣게 되는게, 말을 듣다보면 치솟는 분노와 환멸로 마음에 상처가 날 지경이기 때문이다. 사실이다. 그는 엄청난 홈쇼핑 마니아다.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은 물론 해외여행 상품도 홈쇼핑을 이용한다. 주방용품, 위생용품, 수건, 정장, 구두, 속옷, 양말까지 홈쇼핑에서 구입한다. 얼마 전에는 승용차를 바꿨는데,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수입차를 구입, 주변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친구들의 반응에 대해 그는 ‘왜 그러지?’ 하는 표정으로 응대하곤 한다. 누구나 쇼핑을 하며, 자신은 그 수단 가운데 홈쇼핑을 이용할 뿐이라는 것. 가격 조건도 일반 쇼핑보다 월등하며, 홈쇼핑을 운영하는 회사들이 모두 대기업이기 때문에 품질과 서비스 관리가 착착 돌아간다는 것이 이유다. 모두 맞는 말이다. 문제는 그의 과도한 쇼핑에 있다.
그는 필요한 물건이 있어서 홈쇼핑 프로그램을 보는 게 아니라,
홈쇼핑을 보다 갖고싶은 물건이 등장하면 사려 한다. 목적구매가 아닌 충동구매를 한다는 것이다. 충동구매의 결과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런닝머신은 빨래건조대가 되기 일쑤고 대부분의 운동 기구들도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소파 밑으로 들어가거나 창고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고 많다. 제 값 못하고 사라진 최근의 품목 가격만 모아도 단숨에 100만원이 넘는다. 매일 홈쇼핑을 애청하는 그의 ‘헛돈질’를 계산해 보면 일년에 최소 400만원이 넘을 것이라는 게 조경환 씨의 고백이다. 그는 홈쇼핑의 순기능을 주장하면서도 ‘중독 증상’에 의한 ‘낭비’ 또한 심각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또한 ‘홈쇼핑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은 TV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 뿐인데, 과연 조경환 씨는 TV 없는 세상에 살 수 있을까?
6. ‘셀프 감사’ 서 부장의 자동차 사랑
중견 기업의 부장으로 연봉 7000만원이 채 되지 않는 서문영(가명) 씨의 취미는 자동차 바꾸기다. 그의 차 사랑은 2000년부터 시작되었다. 그 전만 해도 그는 SM5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1년 1월에 BMW 3시리즈를 타기 시작했다. 모두들 ‘우와~~! 로또 맞았냐?’라고 물었는데 그의 대답은 다소 생뚱맞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도 이제 나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겠어.’ 그렇지 않아도 사람은 다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것 아니었나? 어쨌든 그는 열심히 사는 자신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의미로 ‘좋은 차를 계속 사주겠노라’고 말했다.
BMW320으로 시작한 그의 ‘셀프 감사’ 행위는 불과 10년 만에 3.5회의 차량교체 과정을 거쳐 현재 아우디(A4 2.0)까지 이르고 있다. 그가 자동차를 바꿀 때마다 지출하는 돈은 계약금 약 800만원에 매달 리스비용 120만원(세금, 보험료 포함) 정도다. 수입차 리스 기간이 보통 3년이므로 약 4500만원 짜리 수입차를 3년 타면 보증금(약 900만원)을 포함해서 약 5200만원을 지불하는데, 그나마 약정이 끝나면 자동차를 리스사에 돌려주거나 이른바 잔존가치 비용을 몫돈으로 낸 후 차를 인수하게된다. 리스만 끝내고 차를 바꿔 타면 서 부장이 3년 간 약 5200만원, 차를 완전히 인수하거나 갈아탈 경우 약 6500만원을 쓰는 셈이다. 3년에 6500만원이면 일년에 2150만원을 차 값에 쓴다는 말이 된다. 거기에 연료비 600만원(월 50만원, 12개월)과 자동차가 있어서 지출하게 되는 과잉 소비 등을 합하면 등 3000만원을 상회한다고 볼 수 있다. 돈만 놓고 생각해 보면 ‘셀프 감사’ 비용이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고급 승용차가 자신의 고달픈 삶을 위로해 주는 유일한 통로라면 그냥 금융 비용 포함 7000만원 선의 승용차를 현금이나 할부로 사 10년을 타면 될 일인데, 굳이 갈아타기를 함으로써 같은 기간 대비 그는 2억원이 넘는 돈을 자동차 비용으로 낭비하고 있다. 차액 1억3000만원은 그의 아내가 그렇게 원하는 부부동반 호주 횡단 여행을 10번도 더 갈 수 있는 규모다.
7. 그때는 살만 했다고? 1보 전진 2보 후퇴한 경식 아버지의 결정적 실수
50대 중년인 경식이(가명) 아빠는 ‘내가 죽어야지’를 입에 달고 다닌다. 그는 조그만 프랜차이즈 식당 두 곳을 운영하면서 월 2000만원 정도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다. 본인이나 부인이 가게에 나가지 않고 그 정도 버는 것이니 짭짤한 사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퇴직 후 첫 가게를 열고 부부가 함께 고생하며 일할 때만 해도 경식 아빠는 하루에 4시간만 자며 억척스럽게 살았다. 다행히 가게가 자리를 잡아 권리금 받고 팔아버린 다음 다른 프랜차이즈에 가입한 뒤로는 여유가 생겼지만 여전히 부부가 똘똘 뭉쳐 벌고 또 번 결과 괜찮은 프랜차이즈 음식점 하나를 더 만들었고 여전히 실적이 좋은 덕분에 심신이 편안해진 것이다. 미안한 표현이지만, 경식이 아버지는 ‘돈 없으면 거지, 돈 많으면 양아치’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어느날 살만해진 그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경마다. ‘잉여자금으로 뭘 더 해 볼까?’ 궁리하던 그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을 때 하필 그 시선에 경마 관련 단체의 로고가 들어온 것은 그뿐 아니라 온 집안의 불행이었다. 그리고 찾아온 주말에 그는 결국 생애 첫 마권 구입을 시작했고, 그렇게 일년을 보낸 끝에 잘 되는 가게 하나를 팔아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가 경마로 날린 돈은 무려 2억원이 넘는다. 악순환은 ‘한 탕’으로 시작되었다. 야금야금 잃은 돈의 본전을 찾으려면 한 탕에 그 돈을 ‘땡길 수 있는’ 규모의 돈을 베팅해야 했고, 그렇게 베팅할 때마다 그의 통장의 돈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그가 아내에게 그간의 일을 고백하고 ‘가게 하나를 넘길 수 밖에 없다’는 말을 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이 그동안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했으니 그 정도 날아가도 괜찮다.
풀 죽어 살지 말고 나와 함께 가게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자.”
남은 가게 하나를 놓고 대대적 구조조정을 벌인 경식 아빠는 가족처럼 지내왔던 직원들을 해고하고 아내를 다시 주방으로 밀어넣었다. 그날 밤, 경식 아빠는 얼굴이 흑빛이 되어 가게를 떠나던 직원들의 얼굴과, 애써 ‘오랜만에 몸 좀 풀게 생겼네’ 라며 웃는 얼굴로 조리대 앞에 서던 아내의 모습 때문에 그냥 잘 수 없다며 과음을 하고야 말았다. 가게에서나 집에서는 그러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그는 친구를 만날 때마다 ‘내가 죽어야지’를 노래한다.
그의 1년 베팅 생활을 고맙다고 생각해야 할까?
MK 이영근(프리랜서)님의 글